Space - 08.2019

(singke) #1
030

자연을 가까이에 두려는 개인의 욕망과 도시


생활의 질적 향상을 위한 대중의 요구는


도심 속 인공 자연을 탄생시켰다. 자연


공간에 대한 환상은 줄어든 적이 없고 그


결과 공원, 식물원, 동물원과 같은 새로운


도시 공간을 형성했다. 그러나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자연


공간은 도심 속 환경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도시에 종속된 공간으로 전락되곤 한다.


서펜타인 갤러리는 영국에 실현작이 없는


건축가들을 매년 런던 하이드 파크로 초청해


그들의 앞마당을 내어준다. 서펜타인의 초대를


받은 건축가들은 구축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차적 기능을 넘어 공간적 실험을 통해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려 시도한다. 매년 여름,


하이드 파크는 새로운 실험을 보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미술관이 된다. 하지만 미술관 역시


도시에 종속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공원의


존재감이 쉽게 바뀌지는 않으며 그 안에 놓인


파빌리온은 훌륭한 오브제로 머무르곤 한다.


서펜타인 갤러리는 2019년 초청 건축가로


이시가미 준야를 선정했다. 이시가미는


독립적 건물이 아닌 풍경의 일부로서 건축을


선보이고자 한다. 오브제가 아닌 환경으로서의


건축을 선언한 것이다. 그의 건축은 늘 환경이


화두였다. 첫 번째 건축 작업인 가나가와


공과대학교 KAIT 워크숍(2008)은 반복되는


동선이 없어 마치 숲속과도 같은, 자연과 건축


사이의 공간이었다. 이런 그가 인공 자연인


공원에는 어떻게 반응하여 풍경으로서의


파빌리온을 만들지 궁금해진다. 파빌리온이


풍경과 같은 환경 자체가 될 수 있다면 그런


환경을 품어야 하는 공원도 도시의 일부가 아닌


새로운 환경으로 거듭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시가미가 콜라주 이미지를 통해 제시하는


파빌리온은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젖어 색이


진해진 까만 돌무더기 모습이다. 재료도


구축법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추상적인


이미지 속에는 두 사람이 우산을 쓰고 멍하니


파빌리온을 감상하고 있다. 하지만 6월 20일,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서펜타인 갤러리


아트디렉터)와 이시가미의 대담회가 열리던


그날은 날씨가 맑았다. 밝은 햇빛으로 인해


철골 프레임과 돌 사이의 방수막이 도드라졌다.


강연장을 떠날지 남을지 고민하는 찰나에


오브리스트가 콜라주를 언급했다. 이시가미는


“평범한 투시도가 아닌, 다른 생각을 갖게


하는 콜라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상상력을 대변하는 중요 장치로 이미지를


강조하는 대목이다. “비 오는 날을 상상했다”는


말은 비를 맞아 까맣게 변한 파빌리온이 그가


바라는 풍경 중 하나임을 말해준다. 비 오는


날의 돌지붕을 표현한 이 추상적 콜라주는


울창한 숲과 같은 환경에 대해 여러 감정이


공존하듯 관람객이 파빌리온을 각자의


풍경으로 경험하며 다르게 느낄 여유를 준다.


동굴 같은 내부는 어두운 색의 돌지붕과 이를


지지하는 얇은 기둥을 보여주며 재료와 구축법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알려준다. 이시가미는


“돌은 풍경을 만들고, 풍경은 대부분 건물 밖에


있다. 돌이 바깥에서 만들어내는 풍경처럼


건물 내부에도 풍경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그의 의도대로 돌무더기가 만든


지붕이 공원 전체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까.


파빌리온을 둘러싼 공원은 그대로이지 않은가.


이러한 문제는 단순하게도 파빌리온의 작은


규모 때문일 수 있다. 우리는 어떤 대상의


전체를 파악하는 순간 환경이 아닌 오브제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파빌리온이 오브제로


남으면 공원은 또 다시 미술관이 되고 만다.


그동안 이시가미는 너비와 높이, 두께와 길이


같은 척도에서 일반적 비례를 비트는 작업을


선보였다. 1.3m 너비에 45m 높이를 가진 채플
오브 밸리(2017), 10mm 두께로 100m를
덮은 대학교 다목적홀(2016)과 같은 제안은
“건축이 어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넘어
자유롭게 생각하고 싶다”▼1는 그의 바람을
솔직하게 전달한다. 그의 건축은 자유로운
스케일 속에서 재료와 구축의 극단적 정교함이
빚어낸 결과였다. 그러나 이 파빌리온은 이전
작업들과 비교해 재료와 구축법은 평범하고
건물의 경계는 한눈에 들어온다. 비틀린
스케일이 주는 놀라움이 이곳에는 없다. 그가
주목한 것이 다른 것임을 알게 되며 ‘어떻게’
보다는 ‘왜’ 이렇게 지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이시가미는 “고대 건물은 전 세계에 걸쳐 비슷한
점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일본, 중국, 유럽에서
돌로 된 지붕을 발견할 수 있다. 보편성을
가진 고대의 기술에 집중했다”며 돌을 선택한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콘텍스트를 고려하여 영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선택했다. 돌이라는 재료와 고대의
기술을 사용하여 영국만의 특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보편성이라는 주제를 언급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돌지붕의 재료는 영국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컴브리안 슬레이트이고, 구축법도


가장 기초적인 겹쳐쌓기다. 이러한 보편성의


추구는 앨리슨과 피터 스미슨의 ‘애스 파운드’를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이시가미는 일상 속의


새로운 가치 발견이 아니라 공원 풍경이라는


일상적 환경을 연장하기 위해 보편적 재료를


추구한다. 이는 그가 주목한 것이 건축을 통해


만들어낼 풍경임을 확실히 한다. 이 명료한


태도는 “이 건물을 이미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다”는 그의 말과 이어진다.


하지만 보편성의 추구만으로 건축이 풍경이


되었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대신에 우리는


풍경은 주변과의 관계라는 점에서 공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시가미와 그의 팀은


그들의 구축이 주변을 바꾸는 힘이 있음을


증명해왔다. 기린아트 프로젝트에 출품한 3mm
두께의 테이블(2005)은 9m의 압도적 길이를
통해 마치 무중력 상태로 떠 있는 듯한 감각을
이끌었다. 또한 2010 베니스비엔날레에서
0.9mm의 탄소섬유로 이루어진 아키텍처 애스
에어(2010)를 통해 오브제와 배경 사이에서
방황하는 시각적 마비 상태를 만들었다. 그들이
하이드 파크에서 비틀고 싶은 감각은 무엇일까?
돌지붕은 “보편적인 슬레이트 지붕과 같이
무거운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부드러운
바람에도 날아갈 듯 공중에 뜬 가벼운
종잇조각처럼” 보인다.▼2 이시가미는 “작은
돌이기 때문에 더 강력한 면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며 ‘돌은 무겁다’는 일반적 무게 감각을
비튼다. 겹겹이 쌓인 흑빛의 얇은 돌들은
건축가의 표현처럼 피어오를 듯한 가벼움으로
주변을 공기처럼 감싼 채 우리의 감각을
자극한다. 61t의 돌을 떠받치는 얇은 기둥들은
무거운 돌을 떠받쳐야 할지 혹은 날아갈 듯
가벼운 종잇조각을 붙잡아야 할지 방황하며
단순한 구조체의 역할을 벗어난다. 비틀어진
무게 감각으로 바라본 파빌리온은 “전에
보지 못한 풍경의 확장”▼3을 보여주며 공원의
분위기를 바꾼다. 하늘을 등지고 나는 “검은
새”▼4가 되기도, 땅에서 솟아오른 동굴 같기도
한 이 돌무더기는 공원의 풍경을 재조직하는
풍경 자체가 된다. 그가 속한 공원을 여러 해석이
가능한 새로운 환경으로 만드는 것이다.
풍경의 일부로서 파빌리온을 바라보는 순간,
놀랍게도 그의 건축은 다시 한 번 우리의
감각을 비튼다. 풍경은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그 경계인지 정의하기 힘든 환경의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공원으로, 공원에서


또 다른 환경인 풍경으로의 전환은 더 이상


이곳이 도시 공간이 아님을 깨닫게 하면서


우리의 원초적 감각을 회복시킨다. 지구의


세포조직을 그대로 떼온 것 같은 이 돌무더기는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다가온다. 앞선


작업들이 극단적인 정밀함으로 깊이를 파고드는


침술과 같았다면, 이번에 그가 들춰 올린


돌무더기는 ‘원초성의 회복’을 통해 주변으로


무한히 확장되는 정신요법처럼 느껴진다.


거대한 공원마저도 자연의 재현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감을 가진 새로운 환경으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내부에서 바라본 공원의


풍경은 더 이상 도시에 종속된 요소가 아니다.


풍경이 된 파빌리온은 어떤 환경 한가운데로서


공원과 함께 작동한다. 내부 풍경이 주변과


분리되지 않는 한 파빌리온은 미술관 속


오브제가 되지 않는다. 이 돌무더기는 또 다시


단순한 피난처를 넘어 환경으로 나아간다.


REPORT SERPENTINE PAVILION 2019:
ARCHITECTURE AS A LANDSCAPE; A PARK AS AN ENVIRONMENT

1.^ 까르띠에 재단 홈페이지 [www.fondationcartier.com/en/
exhibitions/junya-ishigami]
2. 서펜타인 갤러리 홈페이지 [www.serpentinegalleries.org]
3.^ Ibid.
4.^ Sebastian Jordahn, ‘Serpentine Pavilion designed to be
“part of surrounding landscape” says Junya Ishigami’,
Dezeen, 2019.


030

자연을 가까이에 두려는 개인의 욕망과 도시


생활의 질적 향상을 위한 대중의 요구는


도심 속 인공 자연을 탄생시켰다. 자연


공간에 대한 환상은 줄어든 적이 없고 그


결과 공원, 식물원, 동물원과 같은 새로운


도시 공간을 형성했다. 그러나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자연


공간은 도심 속 환경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도시에 종속된 공간으로 전락되곤 한다.


서펜타인 갤러리는 영국에 실현작이 없는


건축가들을 매년 런던 하이드 파크로 초청해


그들의 앞마당을 내어준다. 서펜타인의 초대를


받은 건축가들은 구축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차적 기능을 넘어 공간적 실험을 통해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려 시도한다. 매년 여름,


하이드 파크는 새로운 실험을 보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미술관이 된다. 하지만 미술관 역시


도시에 종속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공원의


존재감이 쉽게 바뀌지는 않으며 그 안에 놓인


파빌리온은 훌륭한 오브제로 머무르곤 한다.


서펜타인 갤러리는 2019년 초청 건축가로


이시가미 준야를 선정했다. 이시가미는


독립적 건물이 아닌 풍경의 일부로서 건축을


선보이고자 한다. 오브제가 아닌 환경으로서의


건축을 선언한 것이다. 그의 건축은 늘 환경이


화두였다. 첫 번째 건축 작업인 가나가와


공과대학교 KAIT 워크숍(2008)은 반복되는


동선이 없어 마치 숲속과도 같은, 자연과 건축


사이의 공간이었다. 이런 그가 인공 자연인


공원에는 어떻게 반응하여 풍경으로서의


파빌리온을 만들지 궁금해진다. 파빌리온이


풍경과 같은 환경 자체가 될 수 있다면 그런


환경을 품어야 하는 공원도 도시의 일부가 아닌


새로운 환경으로 거듭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시가미가 콜라주 이미지를 통해 제시하는


파빌리온은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젖어 색이


진해진 까만 돌무더기 모습이다. 재료도


구축법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추상적인


이미지 속에는 두 사람이 우산을 쓰고 멍하니


파빌리온을 감상하고 있다. 하지만 6월 20일,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서펜타인 갤러리


아트디렉터)와 이시가미의 대담회가 열리던


그날은 날씨가 맑았다. 밝은 햇빛으로 인해


철골 프레임과 돌 사이의 방수막이 도드라졌다.


강연장을 떠날지 남을지 고민하는 찰나에


오브리스트가 콜라주를 언급했다. 이시가미는


“평범한 투시도가 아닌, 다른 생각을 갖게


하는 콜라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상상력을 대변하는 중요 장치로 이미지를


강조하는 대목이다. “비 오는 날을 상상했다”는


말은 비를 맞아 까맣게 변한 파빌리온이 그가


바라는 풍경 중 하나임을 말해준다. 비 오는


날의 돌지붕을 표현한 이 추상적 콜라주는


울창한 숲과 같은 환경에 대해 여러 감정이


공존하듯 관람객이 파빌리온을 각자의


풍경으로 경험하며 다르게 느낄 여유를 준다.


동굴 같은 내부는 어두운 색의 돌지붕과 이를


지지하는 얇은 기둥을 보여주며 재료와 구축법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알려준다. 이시가미는


“돌은 풍경을 만들고, 풍경은 대부분 건물 밖에


있다. 돌이 바깥에서 만들어내는 풍경처럼


건물 내부에도 풍경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그의 의도대로 돌무더기가 만든


지붕이 공원 전체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까.


파빌리온을 둘러싼 공원은 그대로이지 않은가.


이러한 문제는 단순하게도 파빌리온의 작은


규모 때문일 수 있다. 우리는 어떤 대상의


전체를 파악하는 순간 환경이 아닌 오브제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파빌리온이 오브제로


남으면 공원은 또 다시 미술관이 되고 만다.


그동안 이시가미는 너비와 높이, 두께와 길이


같은 척도에서 일반적 비례를 비트는 작업을


선보였다. 1.3m 너비에 45m 높이를 가진 채플
오브 밸리(2017), 10mm 두께로 100m를
덮은 대학교 다목적홀(2016)과 같은 제안은
“건축이 어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넘어
자유롭게 생각하고 싶다”▼1는 그의 바람을
솔직하게 전달한다. 그의 건축은 자유로운
스케일 속에서 재료와 구축의 극단적 정교함이
빚어낸 결과였다. 그러나 이 파빌리온은 이전
작업들과 비교해 재료와 구축법은 평범하고
건물의 경계는 한눈에 들어온다. 비틀린
스케일이 주는 놀라움이 이곳에는 없다. 그가
주목한 것이 다른 것임을 알게 되며 ‘어떻게’
보다는 ‘왜’ 이렇게 지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이시가미는 “고대 건물은 전 세계에 걸쳐 비슷한
점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일본, 중국, 유럽에서
돌로 된 지붕을 발견할 수 있다. 보편성을
가진 고대의 기술에 집중했다”며 돌을 선택한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콘텍스트를 고려하여 영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선택했다. 돌이라는 재료와 고대의
기술을 사용하여 영국만의 특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보편성이라는 주제를 언급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돌지붕의 재료는 영국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컴브리안 슬레이트이고, 구축법도


가장 기초적인 겹쳐쌓기다. 이러한 보편성의


추구는 앨리슨과 피터 스미슨의 ‘애스 파운드’를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이시가미는 일상 속의


새로운 가치 발견이 아니라 공원 풍경이라는


일상적 환경을 연장하기 위해 보편적 재료를


추구한다. 이는 그가 주목한 것이 건축을 통해


만들어낼 풍경임을 확실히 한다. 이 명료한


태도는 “이 건물을 이미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다”는 그의 말과 이어진다.


하지만 보편성의 추구만으로 건축이 풍경이


되었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대신에 우리는


풍경은 주변과의 관계라는 점에서 공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시가미와 그의 팀은


그들의 구축이 주변을 바꾸는 힘이 있음을


증명해왔다. 기린아트 프로젝트에 출품한 3mm
두께의 테이블(2005)은 9m의 압도적 길이를
통해 마치 무중력 상태로 떠 있는 듯한 감각을
이끌었다. 또한 2010 베니스비엔날레에서
0.9mm의 탄소섬유로 이루어진 아키텍처 애스
에어(2010)를 통해 오브제와 배경 사이에서
방황하는 시각적 마비 상태를 만들었다. 그들이
하이드 파크에서 비틀고 싶은 감각은 무엇일까?
돌지붕은 “보편적인 슬레이트 지붕과 같이
무거운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부드러운
바람에도 날아갈 듯 공중에 뜬 가벼운
종잇조각처럼” 보인다.▼2 이시가미는 “작은
돌이기 때문에 더 강력한 면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며 ‘돌은 무겁다’는 일반적 무게 감각을
비튼다. 겹겹이 쌓인 흑빛의 얇은 돌들은
건축가의 표현처럼 피어오를 듯한 가벼움으로
주변을 공기처럼 감싼 채 우리의 감각을
자극한다. 61t의 돌을 떠받치는 얇은 기둥들은
무거운 돌을 떠받쳐야 할지 혹은 날아갈 듯
가벼운 종잇조각을 붙잡아야 할지 방황하며
단순한 구조체의 역할을 벗어난다. 비틀어진
무게 감각으로 바라본 파빌리온은 “전에
보지 못한 풍경의 확장”▼3을 보여주며 공원의
분위기를 바꾼다. 하늘을 등지고 나는 “검은
새”▼4가 되기도, 땅에서 솟아오른 동굴 같기도
한 이 돌무더기는 공원의 풍경을 재조직하는
풍경 자체가 된다. 그가 속한 공원을 여러 해석이
가능한 새로운 환경으로 만드는 것이다.
풍경의 일부로서 파빌리온을 바라보는 순간,
놀랍게도 그의 건축은 다시 한 번 우리의
감각을 비튼다. 풍경은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그 경계인지 정의하기 힘든 환경의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공원으로, 공원에서


또 다른 환경인 풍경으로의 전환은 더 이상


이곳이 도시 공간이 아님을 깨닫게 하면서


우리의 원초적 감각을 회복시킨다. 지구의


세포조직을 그대로 떼온 것 같은 이 돌무더기는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다가온다. 앞선


작업들이 극단적인 정밀함으로 깊이를 파고드는


침술과 같았다면, 이번에 그가 들춰 올린


돌무더기는 ‘원초성의 회복’을 통해 주변으로


무한히 확장되는 정신요법처럼 느껴진다.


거대한 공원마저도 자연의 재현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감을 가진 새로운 환경으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내부에서 바라본 공원의


풍경은 더 이상 도시에 종속된 요소가 아니다.


풍경이 된 파빌리온은 어떤 환경 한가운데로서


공원과 함께 작동한다. 내부 풍경이 주변과


분리되지 않는 한 파빌리온은 미술관 속


오브제가 되지 않는다. 이 돌무더기는 또 다시


단순한 피난처를 넘어 환경으로 나아간다.


REPORT SERPENTINE PAVILION 2019:
ARCHITECTURE AS A LANDSCAPE; A PARK AS AN ENVIRONMENT

1.까르띠에재단 홈페이지[www.fondationcartier.com/en/
exhibitions/junya-ishigami]
2.서펜타인갤러리홈페이지[www.serpentinegalleries.org]
3.Ibid.
4.Sebastian Jordahn, ‘Serpentine Pavilion designed to be
“part of surrounding landscape” says Junya Ishigami’,
Dezeen,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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