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 - 08.2019

(singke) #1
039

실무 건축가

건축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다. 혹자는
관념적 이상에 초점을 맞추어 작업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실제로 완성되는 과정과 결과에 집중하기도 한다. 건축가로
독립하기 전 나는 미술대학에서 개념적 작업과 비평을 배웠고,
졸업 후 국내의 큰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에서 경험을 쌓았다.
아이디어나 개념을 바탕으로 하는 작업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작업을 하는
데 있어 직관과 보편적 해결 방법 사이의 균형감각을 찾기로
했다. 물론 이분법적으로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 문제의 해결에만 집중하면 틀에 박힌 결과물만
양산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고, 너무 개념만을 쫓다 보면
계획과 결과물이 다른 건축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페이퍼
아키텍츠의 지어지지 않은 훌륭한 계획안에 우리는 탄복하고
감탄한다. 그러나 실제 완공작이 있는 건축가의 계획안과,
‘계획안만 작업하는 건축가’의 계획안의 차이는 엄청날
것이리라. 루이스 설리번은 자신이 설계한 쉴러 극장(Schiller
Theater Building)이 철거된다는 소식을 듣고 “놀랄 일이 아니다.
내가 오래 산다면 결국 내 건물이 모두 없어지는 광경을 보게
될 수도 있다. 종국에 남는 것은 개념뿐이다”라고 했다. 이 말에
설득력이 있는 것은 설리번이 전자의 경우이기 때문이리라.
건축가의 글은 건축 개요나 간단한 에피소드 정도가 적당하고,
스케치나 화려한 그래픽보다는 공사용 도면이 좋으며,
강연보다는 전시나 오픈 하우스가 더 반갑다. 민워크샵은
도면을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현장에서 조율하는 과정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디테일

요즘에는 마감의 수준이나 기술적 성취도가 일정 수준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건축물을 답사하는 사람들도 이에 대해
많이 언급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건축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수공예적 디테일’이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건축계에서
중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는 듯하다. 나는 어린 시절 부모의
영향으로 ‘잘 만들어진 것’, ‘세련되고 멋진 것’을 많이 경험하며
자랐고, 건축가인 아버지 덕분에 좋은 디테일도 많이 접했다.
그래서 이런 최근의 경향이 유행에 뒤처지는 것을 못 견디는
현상으로만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든다. 디테일은 단순히
재료와 재료, 덩어리들끼리 만나는 부분의 해결이나 마감을
처리하는 방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술의 과시 같은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건축의 요소들을 자유롭게
다룰 줄 아는 능력이다. 디테일을 구사할 때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선, 면, 덩어리, 재료 등의 건축 요소들을 돋보이게 하거나,
덤덤하게 표현하는 등 각각의 상황에 맞는 디테일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원칙은 작은 스케일에서 큰 스케일로
발전하는 디자인을 가능하게 한다. ‘오목한 집’(「SPACE(공간)」
571호 참고)에서 1층 칸막이 벽에 요철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다. 요철이 있는 하나의 덩어리보다는 분절된
덩어리로 나누는 것이 전체 공간의 틀을 해치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벽을 끊고 유리를 끼워 넣었다. 일부러 다른 재료를
사용하기 위한 디테일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벽을 끊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디테일이었으며, 유리와 벽체가 만나는
방법은 오히려 큰 고민이 아니었다. 이번에 소개되는 ‘둥근
지붕 집’에서 가장 중요한 디테일은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여야 하는 세탁실의 문과 철골 구조가 삽입되었음을

암시하는 주방의 등박스다. ‘두라스택 본사’에서는 벽돌과 지붕
슬래브가 만나는 지점에 25mm 틈을 주었다. 이것은 벽돌로
이루어진 매스가 콘크리트 지붕을 받치는 것 같지만, 사실 내부
콘크리트 내력벽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트릭으로서의
디테일이다. ‘카페 톤’에서 가장 중요한 디테일은 육중한
외부 기둥과 지붕의 역보가 만나는 방식이다. 지붕 슬래브,
큰 기둥, 역보가 각각 형태를 드러내며, 조립되어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철근의 접합 방식을 변경했다. 감탄사가
나오는 숙련된 솜씨와 비용이 많이 들어간 화려한 상세보다는
구석구석 소홀히 하지 않고, 건축의 맥락에 상응하는 디테일이
더 중요하다.

빛(자연광과 인공조명)

어느 건축가가 빛을 다루는 것을 소홀히 하겠냐마는 자연광과
인공조명을 동시에 잘 다루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나는 빛을
공간에 유입시킬 때, 그 빛이 어디서 들어오는지 모호하게
만들기를 좋아한다. ‘기묘한 모서리 집’에서는 외벽을 뚫어
만드는 일반적 형태의 창문이 아닌, 나누어진 건물의 매스
틈으로 자연광을 들이는 수법을 사용했고, 오목한 집에서는
이중 벽체를 설치하여 벽에 뚫린 개구부와 그 위의 천창
사이에서 빛을 산란시켜 내부로 들어오게 했다. 사람들은
2층 커브벽의 개구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인공조명이라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빛의 질감과 방향이 바뀌는 것을
보면서 ‘아! 저게 자연광이구나’ 하고 인지하게 된다. 창문의
형태나 크기도 중요하지만 공간 안에서의 위치가 더 중요하다.
둥근 지붕 집에서는 1층의 바닥 위 45cm까지 내려오는 낮은

Durastack
Headquarters

039

실무 건축가


건축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다. 혹자는
관념적 이상에 초점을 맞추어 작업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실제로 완성되는 과정과 결과에 집중하기도 한다. 건축가로
독립하기 전 나는 미술대학에서 개념적 작업과 비평을 배웠고,
졸업 후 국내의 큰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에서 경험을 쌓았다.
아이디어나 개념을 바탕으로 하는 작업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작업을 하는
데 있어 직관과 보편적 해결 방법 사이의 균형감각을 찾기로
했다. 물론 이분법적으로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 문제의 해결에만 집중하면 틀에 박힌 결과물만
양산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고, 너무 개념만을 쫓다 보면
계획과 결과물이 다른 건축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페이퍼
아키텍츠의 지어지지 않은 훌륭한 계획안에 우리는 탄복하고
감탄한다. 그러나 실제 완공작이 있는 건축가의 계획안과,
‘계획안만 작업하는 건축가’의 계획안의 차이는 엄청날
것이리라. 루이스 설리번은 자신이 설계한 쉴러 극장(Schiller
Theater Building)이 철거된다는 소식을 듣고 “놀랄 일이 아니다.
내가 오래 산다면 결국 내 건물이 모두 없어지는 광경을 보게
될 수도 있다. 종국에 남는 것은 개념뿐이다”라고 했다. 이 말에
설득력이 있는 것은 설리번이 전자의 경우이기 때문이리라.
건축가의 글은 건축 개요나 간단한 에피소드 정도가 적당하고,
스케치나 화려한 그래픽보다는 공사용 도면이 좋으며,
강연보다는 전시나 오픈 하우스가 더 반갑다. 민워크샵은
도면을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현장에서 조율하는 과정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디테일

요즘에는 마감의 수준이나 기술적 성취도가 일정 수준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건축물을 답사하는 사람들도 이에 대해
많이 언급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건축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수공예적 디테일’이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건축계에서
중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는 듯하다. 나는 어린 시절 부모의
영향으로 ‘잘 만들어진 것’, ‘세련되고 멋진 것’을 많이 경험하며
자랐고, 건축가인 아버지 덕분에 좋은 디테일도 많이 접했다.
그래서 이런 최근의 경향이 유행에 뒤처지는 것을 못 견디는
현상으로만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든다. 디테일은 단순히
재료와 재료, 덩어리들끼리 만나는 부분의 해결이나 마감을
처리하는 방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술의 과시 같은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건축의 요소들을 자유롭게
다룰 줄 아는 능력이다. 디테일을 구사할 때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선, 면, 덩어리, 재료 등의 건축 요소들을 돋보이게 하거나,
덤덤하게 표현하는 등 각각의 상황에 맞는 디테일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원칙은 작은 스케일에서 큰 스케일로
발전하는 디자인을 가능하게 한다. ‘오목한 집’(「SPACE(공간)」
571호 참고)에서 1층 칸막이 벽에 요철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다. 요철이 있는 하나의 덩어리보다는 분절된
덩어리로 나누는 것이 전체 공간의 틀을 해치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벽을 끊고 유리를 끼워 넣었다. 일부러 다른 재료를
사용하기 위한 디테일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벽을 끊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디테일이었으며, 유리와 벽체가 만나는
방법은 오히려 큰 고민이 아니었다. 이번에 소개되는 ‘둥근
지붕 집’에서 가장 중요한 디테일은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여야 하는 세탁실의 문과 철골 구조가 삽입되었음을

암시하는 주방의 등박스다. ‘두라스택 본사’에서는 벽돌과 지붕
슬래브가 만나는 지점에 25mm 틈을 주었다. 이것은 벽돌로
이루어진 매스가 콘크리트 지붕을 받치는 것 같지만, 사실 내부
콘크리트 내력벽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트릭으로서의
디테일이다. ‘카페 톤’에서 가장 중요한 디테일은 육중한
외부 기둥과 지붕의 역보가 만나는 방식이다. 지붕 슬래브,
큰 기둥, 역보가 각각 형태를 드러내며, 조립되어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철근의 접합 방식을 변경했다. 감탄사가
나오는 숙련된 솜씨와 비용이 많이 들어간 화려한 상세보다는
구석구석 소홀히 하지 않고, 건축의 맥락에 상응하는 디테일이
더 중요하다.

빛(자연광과 인공조명)

어느 건축가가 빛을 다루는 것을 소홀히 하겠냐마는 자연광과
인공조명을 동시에 잘 다루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나는 빛을
공간에 유입시킬 때, 그 빛이 어디서 들어오는지 모호하게
만들기를 좋아한다. ‘기묘한 모서리 집’에서는 외벽을 뚫어
만드는 일반적 형태의 창문이 아닌, 나누어진 건물의 매스
틈으로 자연광을 들이는 수법을 사용했고, 오목한 집에서는
이중 벽체를 설치하여 벽에 뚫린 개구부와 그 위의 천창
사이에서 빛을 산란시켜 내부로 들어오게 했다. 사람들은
2층 커브벽의 개구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인공조명이라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빛의 질감과 방향이 바뀌는 것을
보면서 ‘아! 저게 자연광이구나’ 하고 인지하게 된다. 창문의
형태나 크기도 중요하지만 공간 안에서의 위치가 더 중요하다.
둥근 지붕 집에서는 1층의 바닥 위 45cm까지 내려오는 낮은

Durast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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