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 - 08.2019

(singke) #1
069

제시한다. 외관상 네 개의 거대한 기둥이 건물 전체를
지탱하고, 2층의 천장은 네 개 기둥의 인장력으로
지탱되고 있다. 마치 리나 보 바르디(Lina Bo Bardi)의
상파울루 미술관과 같은 구조 방식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기둥에 가까이 접근해 보면, 2층 바닥면과
기둥이 미묘하게 떨어져 있음을 알고 놀라게 된다.
2층 바닥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코너의 네 개의 거대
기둥이 아니며, 건물 내부에 있는 작은 원기둥들이다.
그리고 2층 곡선 천장면을 지탱하고 있는 것도 코너의
기둥이 아니고, 2층 창문의 52개의 멀리언 바이다.
멀리언 바는 1m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이것도
구조상으로는 절반 정도 필요할 뿐인데, 공간의
리듬을 위해 1m 간격으로 배치했다고 한다. 겉으로
볼 때 예상되는 구조와 실제의 구조는 서로 다른
방식이다.
미스는 크라운 홀이나 시그램 빌딩에서 힘을 받지
않는 기둥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건물의 질서를
보여주기 위한 장식으로서의 기둥이다. 이것은 사실
구조의 정직성과는 어긋난 방식으로, 구조는 오히려
숨겨져 있거나 속이는 장치가 된다. 여기에 건축가의
내적 고민과 새로운 시도가 나타난다. 카페 톤의 구조
방식은 고트프리드 젬퍼(Gottfried Semper)로부터
이어지는 표피에 대한 전통을 생각나게 한다. 이
전통에서 건축의 본질적 요소는 구조보다는 표피에
있다. 이 전통은 칸을 거쳐서 내려오는 보자르적
전통과는 대조된다. 건축가가 두라스택 본사와는
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의
열려 있는 공간, 파사드가 펴져 있는 건물, 구조가
표피로서의 역할을 하는 건물, 구축적 측면보다는
커튼이나 표피의 표현적 측면이 강조되는 건물들이
그 시도들이다.
구조로 보이지만 구조가 아닌 것, 구조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구조인 것. 이런 방식을 건축가는
‘건축적 기만’으로 설명한다. 기만은 반전을 수반하고
있으며, 놀라움과 함께한다. 때로는 충격이 되기도
하고 유머가 되기도 한다. 니체가 말하듯이, 진리의
반대편에 서 있는 예술적 가상은 그 거짓됨으로
인해서 더욱 빛을 발한다. 자신과 다른 모습을
연기하는 배우가 칭송을 받는 것처럼. 카페 톤은
구조적 진실성과 구조적 기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진다.

두 명의 스승, 두 개의 질문

1974년 스티븐 홀은 루이스 칸 사무실에 일하기
위해서 지원을 하고 합격 통지를 받는다.

필라델피아로 떠나기 위해 준비하던 중에 칸이
방글라데시에서 돌아오던 중 필라델피아 역에서
사망한 소식을 접하고 칸 사무실행을 포기한다.
민우식의 최근작 세 개는 3:1 비율의 건물을 어떤
방식으로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실험을 보여준다.
이 실험들은 공통적으로 현상학적 감각과 원초적
근원성이 공존하고, 건축적 기만이 그 사이를
가로지르며, 미스, 칸, 올지아티, 춤토르, 헤르조그의
실험들을 떠올리게 한다. 미세한 감각에 대한 추구가
있으면서 동시에 근원적인 것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 이 실험들 속에서 건축가가
건축을 대하는 태도는 예사롭지 않다. 그의 근원적인
것과 감각적인 것에 대한 탐구는 그의 두 명의 스승인
루이스 칸과 스티븐 홀에서부터 이어오는 주제이다.
그리고 이 주제는 후설의 제자인 하이데거와 메를로
퐁티가 존재와 몸에 대해서 던진 질문이기도 했다.
건축가 민우식은 건축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해박한
지식과 함께 이런 오래된 질문들 위에서 예사롭지
않은 줄타기를 하고 있다.

카페 톤 옆의 GSI 사옥은 주변의 흩어진 촌락의 지붕에 상응하는 연속된 박공 형태를 갖고 있다.
The GSI Headquarters building next to Café TONN has a series of gable
forms corresponding to the roofs of scattered villages around it.

©Min Workshop

©Min Workshop

069

제시한다. 외관상 네 개의 거대한 기둥이 건물 전체를
지탱하고, 2층의 천장은 네 개 기둥의 인장력으로
지탱되고 있다. 마치 리나 보 바르디(Lina Bo Bardi)의
상파울루 미술관과 같은 구조 방식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기둥에 가까이 접근해 보면, 2층 바닥면과
기둥이 미묘하게 떨어져 있음을 알고 놀라게 된다.
2층 바닥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코너의 네 개의 거대
기둥이 아니며, 건물 내부에 있는 작은 원기둥들이다.
그리고 2층 곡선 천장면을 지탱하고 있는 것도 코너의
기둥이 아니고, 2층 창문의 52개의 멀리언 바이다.
멀리언 바는 1m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이것도
구조상으로는 절반 정도 필요할 뿐인데, 공간의
리듬을 위해 1m 간격으로 배치했다고 한다. 겉으로
볼 때 예상되는 구조와 실제의 구조는 서로 다른
방식이다.
미스는 크라운 홀이나 시그램 빌딩에서 힘을 받지
않는 기둥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건물의 질서를
보여주기 위한 장식으로서의 기둥이다. 이것은 사실
구조의 정직성과는 어긋난 방식으로, 구조는 오히려
숨겨져 있거나 속이는 장치가 된다. 여기에 건축가의
내적 고민과 새로운 시도가 나타난다. 카페 톤의 구조
방식은 고트프리드 젬퍼(Gottfried Semper)로부터
이어지는 표피에 대한 전통을 생각나게 한다. 이
전통에서 건축의 본질적 요소는 구조보다는 표피에
있다. 이 전통은 칸을 거쳐서 내려오는 보자르적
전통과는 대조된다. 건축가가 두라스택 본사와는
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의
열려 있는 공간, 파사드가 펴져 있는 건물, 구조가
표피로서의 역할을 하는 건물, 구축적 측면보다는
커튼이나 표피의 표현적 측면이 강조되는 건물들이
그 시도들이다.
구조로 보이지만 구조가 아닌 것, 구조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구조인 것. 이런 방식을 건축가는
‘건축적 기만’으로 설명한다. 기만은 반전을 수반하고
있으며, 놀라움과 함께한다. 때로는 충격이 되기도
하고 유머가 되기도 한다. 니체가 말하듯이, 진리의
반대편에 서 있는 예술적 가상은 그 거짓됨으로
인해서 더욱 빛을 발한다. 자신과 다른 모습을
연기하는 배우가 칭송을 받는 것처럼. 카페 톤은
구조적 진실성과 구조적 기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진다.


두 명의 스승, 두 개의 질문


1974년 스티븐 홀은 루이스 칸 사무실에 일하기
위해서 지원을 하고 합격 통지를 받는다.


필라델피아로 떠나기 위해 준비하던 중에 칸이
방글라데시에서 돌아오던 중 필라델피아 역에서
사망한 소식을 접하고 칸 사무실행을 포기한다.
민우식의 최근작 세 개는 3:1 비율의 건물을 어떤
방식으로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실험을 보여준다.
이 실험들은 공통적으로 현상학적 감각과 원초적
근원성이 공존하고, 건축적 기만이 그 사이를
가로지르며, 미스, 칸, 올지아티, 춤토르, 헤르조그의
실험들을 떠올리게 한다. 미세한 감각에 대한 추구가
있으면서 동시에 근원적인 것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 이 실험들 속에서 건축가가
건축을 대하는 태도는 예사롭지 않다. 그의 근원적인
것과 감각적인 것에 대한 탐구는 그의 두 명의 스승인
루이스 칸과 스티븐 홀에서부터 이어오는 주제이다.
그리고 이 주제는 후설의 제자인 하이데거와 메를로
퐁티가 존재와 몸에 대해서 던진 질문이기도 했다.
건축가 민우식은 건축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해박한
지식과 함께 이런 오래된 질문들 위에서 예사롭지
않은 줄타기를 하고 있다.

카페 톤 옆의 GSI 사옥은 주변의 흩어진 촌락의 지붕에 상응하는 연속된 박공 형태를 갖고 있다.
The GSI Headquarters building next to Café TONN has a series of gable
forms corresponding to the roofs of scattered villages around it.

©Min Work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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