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 - 08.2019

(singke) #1
078 PROJECT MOYEOGA

‘모여가(募如家)’는 함께 모여 사는


집이라는 뜻이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모여서’라는 뜻도 있다. 말 그대로 여덟


가구, 서른 명이 모여 건축가와 함께


이야기하고 땅도 고르고 집도 정했다.


처음에는 두 집이었다. 건축가 오신욱과 오래


알고 이야기해오면서 함께 모여 사는 집을


꿈꿨던 사람과 공동육아를 위한 공동체 주택에


거주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뭉쳤다. 이후


알음알음 한 집씩 모여 총 여덟 가구가 되었다.


서로 마음을 맞추기가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아파트에서 뛰쳐나오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고, 다른 사람과 테라스를 나누어 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함께 모여 살자고 마음을 모으고,


서로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분을


조정해주기까지 했다. 집을 짓는 과정도 쉽지


않았겠지만, 관리인이 따로 없기 때문에 관리나


청소 등 입주 이후에도 문제가 많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여기 사람들은 함께 청소하고


고칠 부분이 있으면 고쳐 가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나와 함께 방문했던 현장소장과


사람들이 건물의 이곳저곳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 인터뷰했던 입주민 한


명은 공동체 생활에 관한 책을 나에게 보여주면서,


공동체의 장점이 적혀 있는 부분을 읽고 처음에는


과장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런 장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한 집에는


드럼을 치는 사람이 있어서 소음 때문에 처음에는


불만이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서로


마주치면서 살다 보니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했다.


건축가는,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모여 살고 싶다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한 프로젝트에 담아냈다. 각 가구와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여 설계했고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관계망을 제시했다.


그 결과로 사람들은 조금씩 더 서로를


받아들이며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아파트와는 다른 공동주택을 만들기 위해


건축가들은 전용 부분과 전용이 아닌 부분 사이의


관계에 집중한다. 둘 사이의 경계를 흐리기도


하고, 매개나 전이 공간을 놓기도 한다. 전용 부분


자체의 폐쇄성을 조정하거나 다양한 연결점으로


폐쇄성을 완화하기도 한다. 특별한 모임의 공간을


두기도 한다. 초점은 어느 정도로 닫고 또 열어서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마주치게 하는가에 있다.


모여가에서 건축가는 새로운 모험을 하기보다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담는 데 충실했다. 모여가는


그의 예전 작업인 인터화이트(「SPACE(공간)」


579호 참고)와 접근 방법이 비슷하다.


인터화이트에는 이형적인 대지에 계단을


넣으면서 계단참이 넓게 만들어진 부분이 있다.


두 사람이 앉아서 이야기할 수 있는 너비다. 그때


건축가는 쓰임새 있는 자투리 공간이 되었다고


했다. 복도이고 통로지만 변화를 주어 쓰임새


있게 만든 부분인데, 이런 아이디어가 모여가에서


확장되었다. 각 세대가 조금씩 어긋나게


배치되면서 마주 보는 세대 사이 복도 일부가 커져


여유 있는 공간이 되고, 세대 내부의 벽도 직각이


아니라 군데군데 다른 쓰임새를 갖는 식이다.


미묘하게 각을 틀어 다른 부분을 만드는 것.


복도라는 기능을 갖는데, 변화된 부분이 또


다른 쓰임새를 갖는 것. 이것이 모여가가


전체와 부분을 구성하는 방법이고, 단위세대와


공용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건축가는 단위세대에 두 가지 경계를 만들었다.


첫 번째 경계는 창과 개구부다. 전망을 위한


창이나 전용의 조경 공간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있고, 함께 쓰는 마당이나 다른 세대로


통하는 통로로 열리는 것도 있다. 창은 항상 어떤


곳을 향하는데, 열어도 프라이버시의 침해가


없는 곳이 있고 다른 세대로 열리는 곳도 있어


선택적으로 경계를 열 수도 있고 닫을 수도 있다.


두 번째 경계는 공용 공간으로 각 세대에 딸린


외부 공간인데, 옥상이나 마당 혹은 다른


세대의 출입구와 연결된 부분이다. 연결되면서


다른 각도로 인해 변화된 부분도 있고, 그


사이에 추가로 작은 마당을 두어 확장한


부분도 있다. 나무를 심고 싶다는 요구에


따라 마당을 추가하기도, 레크리에이션을


위한 공간으로 낚시도구를 보관하는 장소를


집 앞의 여유 공간에 만들어놓기도 했다.


공용 공간을 두 번째 경계라고 말하는 것은,


별도의 공간이 아니라 사적 공간이 확장된


것이기 때문이다. 1층에 모임을 위한 별도의


공간도 있지만, 모여가의 핵심은 사적 공간이


확장되어 입주자들이 서로 마주친다는 데 있다.


골목의 일부를 사적 공간으로 만들어가면서


서로 마주치고, 그 속에서 미묘하게 서로의


공간을 조율해 어떤 곳은 나의 공간으로, 어떤


곳은 내어주는 공간으로 만들어, 평상을 두고


일상을 나누었던 그런 마주침의 방식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런 삶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천천히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도록


첫 번째 경계를 두었다는 것이다.


아파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서 전용세대


자체는 첫 번째 경계를 조절해 폐쇄적으로 만들


수 있다. 두 번째 경계를 향해 열 수도 있다.


사람들은 생활 속에서 잠깐씩 여러 번 부딪힌다.


하지만 아파트에서처럼 서로를 낯선 공간에서


마주치는 것이 아니라 사적 느낌이 남아있는


두 번째 경계에서, 다시 말해 자신의 자리에서


상대방의 자리에 있는 사람과 마주한다.


출퇴근하면서 쓰레기를 버리러 가면서 우연히


마주치고 한마디씩 인사를 나누게 된다. 그러다


한 집에 모여서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아이들이


마주침을 만들기도 한다. 한 집의 아이가


다른 집에 놀러 갔다가 그 집에서 저녁을 먹게


되고, 저녁을 먹여 보내겠다고 연락을 하면서


어른들도 같이 모여 밥을 먹게 되는 식이다. 야간


근무를 하는 집의 아이를 다른 집에서 돌아가며


돌보아주면서 접점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서


첫 번째 경계를 열게 된다. 현관이 아니라 전용


공간의 테라스를 통해 다른 집으로 가게 된다.


건축가는 사람들을 그룹별로, 또 개별적으로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원하는 바를


충실히 반영했다. 나무 한 그루, 넓은 현관,


자신만의 조경 공간, 거실에서 아이들 방을


볼 수 있는 창이 그것이다. 계획안을 만들고


나서 전체 세대가 모여 각자 자신이 살 집을


골랐는데, 두 시간 만에 모두 정했다고 한다.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만, 각각의 전용 부분마다


구성원의 요구 사항을 잘 맞추어 넣어서


예상보다 쉽게 정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민은 있다. 건축가는 다른 집을 지었던 경험을


토대로 어떤 공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상상하며 모여가를 지었다. 하지만 건축가


오신욱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형태적 이미지도


함께 가져왔다. 전면 도로 측 매스는 인터화이트를


의식했다. 층마다 각을 다르게 하면서 뒤편


3층과 4층 사이에는 구조체로 인해 창과 벽의


어긋남이 생겼다. 사소한 부분이고 시공 과정에서


변경된 부분으로 보이지만, 나에게는 건축가의


열망과 자연스러운 건축 사이의 괴리로 보인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에 찬사를 보내지만, 한편으론


유망한 건축가로 인정받으면서 지금까지 이룩한


것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묻고 싶다.


건축가로 살아가는 여정에서 지금이 오신욱에게


중요한 지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틀을 부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주기를, 나는 바란다.


함께 모여 사는 집


임성훈


동명대학교 교수


078 PROJECT MOYEOGA

‘모여가(募如家)’는 함께 모여 사는


집이라는 뜻이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모여서’라는 뜻도 있다. 말 그대로 여덟


가구, 서른 명이 모여 건축가와 함께


이야기하고 땅도 고르고 집도 정했다.


처음에는 두 집이었다. 건축가 오신욱과 오래


알고 이야기해오면서 함께 모여 사는 집을


꿈꿨던 사람과 공동육아를 위한 공동체 주택에


거주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뭉쳤다. 이후


알음알음 한 집씩 모여 총 여덟 가구가 되었다.


서로 마음을 맞추기가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아파트에서 뛰쳐나오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고, 다른 사람과 테라스를 나누어 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함께 모여 살자고 마음을 모으고,


서로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분을


조정해주기까지 했다. 집을 짓는 과정도 쉽지


않았겠지만, 관리인이 따로 없기 때문에 관리나


청소 등 입주 이후에도 문제가 많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여기 사람들은 함께 청소하고


고칠 부분이 있으면 고쳐 가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나와 함께 방문했던 현장소장과


사람들이 건물의 이곳저곳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 인터뷰했던 입주민 한


명은 공동체 생활에 관한 책을 나에게 보여주면서,


공동체의 장점이 적혀 있는 부분을 읽고 처음에는


과장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런 장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한 집에는


드럼을 치는 사람이 있어서 소음 때문에 처음에는


불만이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서로


마주치면서 살다 보니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했다.


건축가는,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모여 살고 싶다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한 프로젝트에 담아냈다. 각 가구와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여 설계했고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관계망을 제시했다.


그 결과로 사람들은 조금씩 더 서로를


받아들이며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아파트와는 다른 공동주택을 만들기 위해


건축가들은 전용 부분과 전용이 아닌 부분 사이의


관계에 집중한다. 둘 사이의 경계를 흐리기도


하고, 매개나 전이 공간을 놓기도 한다. 전용 부분


자체의 폐쇄성을 조정하거나 다양한 연결점으로


폐쇄성을 완화하기도 한다. 특별한 모임의 공간을


두기도 한다. 초점은 어느 정도로 닫고 또 열어서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마주치게 하는가에 있다.


모여가에서 건축가는 새로운 모험을 하기보다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담는 데 충실했다. 모여가는


그의 예전 작업인 인터화이트(「SPACE(공간)」


579호 참고)와 접근 방법이 비슷하다.


인터화이트에는 이형적인 대지에 계단을


넣으면서 계단참이 넓게 만들어진 부분이 있다.


두 사람이 앉아서 이야기할 수 있는 너비다. 그때


건축가는 쓰임새 있는 자투리 공간이 되었다고


했다. 복도이고 통로지만 변화를 주어 쓰임새


있게 만든 부분인데, 이런 아이디어가 모여가에서


확장되었다. 각 세대가 조금씩 어긋나게


배치되면서 마주 보는 세대 사이 복도 일부가 커져


여유 있는 공간이 되고, 세대 내부의 벽도 직각이


아니라 군데군데 다른 쓰임새를 갖는 식이다.


미묘하게 각을 틀어 다른 부분을 만드는 것.


복도라는 기능을 갖는데, 변화된 부분이 또


다른 쓰임새를 갖는 것. 이것이 모여가가


전체와 부분을 구성하는 방법이고, 단위세대와


공용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건축가는 단위세대에 두 가지 경계를 만들었다.


첫 번째 경계는 창과 개구부다. 전망을 위한


창이나 전용의 조경 공간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있고, 함께 쓰는 마당이나 다른 세대로


통하는 통로로 열리는 것도 있다. 창은 항상 어떤


곳을 향하는데, 열어도 프라이버시의 침해가


없는 곳이 있고 다른 세대로 열리는 곳도 있어


선택적으로 경계를 열 수도 있고 닫을 수도 있다.


두 번째 경계는 공용 공간으로 각 세대에 딸린


외부 공간인데, 옥상이나 마당 혹은 다른


세대의 출입구와 연결된 부분이다. 연결되면서


다른 각도로 인해 변화된 부분도 있고, 그


사이에 추가로 작은 마당을 두어 확장한


부분도 있다. 나무를 심고 싶다는 요구에


따라 마당을 추가하기도, 레크리에이션을


위한 공간으로 낚시도구를 보관하는 장소를


집 앞의 여유 공간에 만들어놓기도 했다.


공용 공간을 두 번째 경계라고 말하는 것은,


별도의 공간이 아니라 사적 공간이 확장된


것이기 때문이다. 1층에 모임을 위한 별도의


공간도 있지만, 모여가의 핵심은 사적 공간이


확장되어 입주자들이 서로 마주친다는 데 있다.


골목의 일부를 사적 공간으로 만들어가면서


서로 마주치고, 그 속에서 미묘하게 서로의


공간을 조율해 어떤 곳은 나의 공간으로, 어떤


곳은 내어주는 공간으로 만들어, 평상을 두고


일상을 나누었던 그런 마주침의 방식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런 삶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천천히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도록


첫 번째 경계를 두었다는 것이다.


아파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서 전용세대


자체는 첫 번째 경계를 조절해 폐쇄적으로 만들


수 있다. 두 번째 경계를 향해 열 수도 있다.


사람들은 생활 속에서 잠깐씩 여러 번 부딪힌다.


하지만 아파트에서처럼 서로를 낯선 공간에서


마주치는 것이 아니라 사적 느낌이 남아있는


두 번째 경계에서, 다시 말해 자신의 자리에서


상대방의 자리에 있는 사람과 마주한다.


출퇴근하면서 쓰레기를 버리러 가면서 우연히


마주치고 한마디씩 인사를 나누게 된다. 그러다


한 집에 모여서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아이들이


마주침을 만들기도 한다. 한 집의 아이가


다른 집에 놀러 갔다가 그 집에서 저녁을 먹게


되고, 저녁을 먹여 보내겠다고 연락을 하면서


어른들도 같이 모여 밥을 먹게 되는 식이다. 야간


근무를 하는 집의 아이를 다른 집에서 돌아가며


돌보아주면서 접점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서


첫 번째 경계를 열게 된다. 현관이 아니라 전용


공간의 테라스를 통해 다른 집으로 가게 된다.


건축가는 사람들을 그룹별로, 또 개별적으로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원하는 바를


충실히 반영했다. 나무 한 그루, 넓은 현관,


자신만의 조경 공간, 거실에서 아이들 방을


볼 수 있는 창이 그것이다. 계획안을 만들고


나서 전체 세대가 모여 각자 자신이 살 집을


골랐는데, 두 시간 만에 모두 정했다고 한다.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만, 각각의 전용 부분마다


구성원의 요구 사항을 잘 맞추어 넣어서


예상보다 쉽게 정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민은 있다. 건축가는 다른 집을 지었던 경험을


토대로 어떤 공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상상하며 모여가를 지었다. 하지만 건축가


오신욱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형태적 이미지도


함께 가져왔다. 전면 도로 측 매스는 인터화이트를


의식했다. 층마다 각을 다르게 하면서 뒤편


3층과 4층 사이에는 구조체로 인해 창과 벽의


어긋남이 생겼다. 사소한 부분이고 시공 과정에서


변경된 부분으로 보이지만, 나에게는 건축가의


열망과 자연스러운 건축 사이의 괴리로 보인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에 찬사를 보내지만, 한편으론


유망한 건축가로 인정받으면서 지금까지 이룩한


것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묻고 싶다.


건축가로 살아가는 여정에서 지금이 오신욱에게


중요한 지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틀을 부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주기를, 나는 바란다.


함께 모여 사는 집


임성훈


동명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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