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대구에 있는 고등
학교에 들어가게 해주면 그 은혜 잊지
않겠다고 했다. 시험을 앞두고 마지막 3
개월 동안은 청로에서 오가는 시간을 벌
기 위해 아예 탑리 내 집에 기거하도록
편리를 봐주었다. 식성이 좋아서 아무
반찬이나 잘 먹고 고봉으로 퍼주는 잡곡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주는 게 기특했
다.
마침내 제자가 대구 고등학교에 합격한
날이었다. 해거름에 그의 아버지가 쌀
한 가마를 자전거에 싣고 우리 집에 찾
아오셨다. 순박한 부성애에 감동했다.
가르친 학생들이 수없이 많지만 26 년이
지난 지금까지 명절마다 찾아오고 소식
을 전해주는 제자는 그 뿐이다. 얼마 전
에는 싱싱한 생오징어 한 상자를 승용차
에 싣고 왔기에 이웃과 나누어 먹으며
‘제자 자랑’하느라 침 마를 새 없었다.
단 1 명이 기억해주는 게 천군만마를 얻
은 것같이 든든하다. 선생님과의 인연을
가장 큰 행운으로 여긴다는 제자. 학교
담임도 아니건만, 과외선생에게 이토록
극진히 생각해주는 제자가 세상에 또 있
을까. 선생님이 저한테 베풀어준 온정에
비하면 제가 해드린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고 말하는 겸손한 태도가 요즘 젊은이
같지 않다.
부친의 뜻에 순종하여 23 세에 장가갔는
데, 얼마 전 장남이 울산대학교에 수시
합격했다니 조혼도 좋은 것 같다.
아까 기차역에서 곁에 서 있던 그에게
“키 178 센티 되나” 하니 딱 알아 맞혔습
니다. 과연 족집게과외선생이라서 잘 맞
추신다고 조커를 보내주었다. 키 크면
싱겁다는 말과는 달리 대화에 유머가 가
미되어 감칠맛 났다. 무엇보다 날 잊지
않는 제자의 마음이 기특하고 고맙다.
제자인 그는 ‘꽃 중의 꽃’이다.
이제 내년에는 바닷가에 집을 지을 계획
이라고 하며, 그때 초대하면 꼭 놀러 오
시라고 한다.
잊지 않고 늘 챙겨주는 제자가 고맙다.
제자가 바닷가에 지은 꿈꾸는 집에서 행
복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