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웃는독서회 회지(2021년 1월 제185호)

(Seokhoon Kim) #1
뒤꼍의 추억
이준관(李準冠·본회 객원 시인)

뒤꼍에는 감나무 한 주 서 있고


밤마다 어머니가 물을 떠놓고 빌던 사


발엔


푸른 별들이 감꽃처럼 피었다 졌다


햇빛으로 반질반질 윤나게 장독대 닦던


어머니 몸에서는 코끝이 찡해지는


간장 냄새가 났다


야단맞고 무릎에 턱을 괴고


코를 훌쩍이고 울고 있으면


아직 떫고 비릿한 감또개가


내 발등에 뚝 떨어졌다, 눈물방울처럼


가끔 장독대에는 어린 뱀이 똬리를 틀


다 가곤 하였지만


뱀은 너무 순해서 혀를 날름거릴 줄도


몰랐고


봄날 자부름에 겨워 자올자올 조는


고양이 콧등에 나비가 앉을락 말락 팔


랑거렸다


뒤꼍 굴뚝에서는 밭에 씨를 뿌리러 간


아버지와


버들붕어 송사리를 쫓아 여울에 간 나


를 부르는


저녁연기 몽실몽실 솟고


누룽지처럼 구수하게 눌어붙은


저녁이 왔다


어머니가 짐짓 모른 척


배고픈 새를 위해 보리쌀 한 줌 흘려


놓던 곳


밤에는 집도 불빛도


고요히 장독 뚜껑으로 덮어 재우던 곳


나를 업어 키우던 어머니 뒷등처럼


때로는 돌아앉아 박꽃처럼 눈물 훔치던


어머니 뒷등처럼


그렇게 그렇게 뒤꼍은 있었다


겨울 농가

저 겨울 농가에서


하룻밤 자고 싶다.


누비포대기처럼 시래기 엮어


외벽에 줄줄이 매달아 놓은 집.


처마 밑에 알전구처럼


씨옥수수 달아놓은 집.


겨울 별자리처럼 천장에


메주 달아놓은 집.


저 겨울 농가


청국장 뜨는 아랫목에


발을 묻고 잠들고 싶다.


밤새 눈이 오는지


개가 아득히 컹컹컹 짖어대고


생쥐가 부뚜막에서


누룽지 한 쪼각 물어가는 집.


머언 밤나무 숲에서 아기올빼미


후후후후 옛날이야기 조르는 소리


들려오는 집.


저 겨울 농가 헛간에 걸어놓은 호미처럼


잠들고 싶다.


동시(童詩)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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