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웃는독서회 회지(2021년 1월 제185호)
10 년 후 내가 하고 싶은 것들
3 층에서 내려오는 박미경의 모습은
허리 잘록한 40 대 여인쯤으로 보인다.
1 층 부동산 사무실과 2 층 사무실에서는
커피를 내리는 향기가 계단에 가득하다.
2, 3 년 전에 종잣돈을 모아 꼬마빌딩을
매입한 그녀는 요즘 생활이 변했다. 매
일 나가던 보험회사를 1 주일에 3 일만
나간다. 물론 출근하는 3 일은 새벽부터
나가 시간 관리를 철저히 한다. 월·화·
목 고객과 상담업무를 하고, 수·금요일
은 경매 물건을 검색하고 부동산 임장
을 다닌다. 벌써 몇 건은 낙찰받아서 소
송을 진행하는 중이고 몇 건은 매매를
중개한 상태이다. 약간의 임대소득이 들
어오니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
바쁜 일상을 쪼개어 시 낭송을 동네
시니어 복지관에 재능 기부한다. 한 달
에 한 번이지만 어르신들은 그 시간을
고대한다. 단순히 낭송에 그치는 것이
아닌 그 시가 만들어진 배경과 시를 만
든 시인의 삶을 반죽해서 이야기하니
당연히 흥미진진하다. 낭송 수업을 듣는
어르신 중에는 구청에서 열리는 낭송대
회에 참가하기 위해 연습을 한다. 70 세
가 넘은 어르신들은 유치환의 「행복」,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을 외우느라 정
신이 없다. 같은 또래의 친구들은 기억
력이 흐릿흐릿해진다는데 이분들은 아마
치매도 일없을 것이다. 세월을 고요히
안은 어르신들은 단맛, 쓴맛을 품은 시
(詩)라는 인생 덩어리를 가슴으로 읽는
다. 시를 가르치며, 나는 어르신들로부
터 살아가는 지혜를 배운다. 내 재주를
조금이라도 주변에 나눌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누군가의 가슴에 시라는 별을
달아주는 일은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나는 그 행복감으로 대가 없이 복지관
시 낭송 수업을 하고 있다.
그녀와 나는 40 여 년 전 만났다. 그
때는 나도 그도 싫고, 좋은 것을 숨길
수 없을 만큼 얕았고, 소견도 풋사과처
럼 시기만 했다. 그 후 그녀는 엄격한
스승님을 만나 머리를 깎고 깊은 산속
에서 산다. 멧돼지 나오는 밤도 만나고
눈 속에 갇힌 겨울도 지내면서 한 생을
잘 가꾸는 구도자 길을 걷는다. 승속이
다르지만 나와 그녀는 여전히 형님 아
우로 의지한다. 스님은 언제든지 절로
들어와서 공부하라지만, 난, 실천은 못
하고, 며칠씩 절에 머물다 오곤 한다.
새벽 4 시에 높은 산에서 보는 별도 아
름답지만, 새벽안개가 걷히는 장관을 보
노라면 사는 것이 그리 두려울 것도 없
다. 안개 걷히면 산도들도 확연히 드러
나는 것처럼 욕심 걷히면 삶도 바로 보
이는 것을 알 수 있으니 말이다.
뜬금없이 앞으로 돌아올 10 여 년을
당겨서 나를 설정하다니 무슨 조화 속
인가? 10 년이 금방 지나간다. 어떤 노
박미경의 마포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