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체신 유물현황조사 정책연구_2021

(ksy) #1

정보·통신·체신관련유물현황조사및역사보존을위한정책방안연구 제^2 장_연구의내용


1 절 - 시 대 구








파발(擺撥)은 조선 시대 통신제도의 한 유형이다. 횃불과 연기로 구체적인 적의 상황을 전달


하는 봉수(烽燧)는 구름과 안개가 짙게 끼면 잘 전달되지 않는 등 한계가 있었다. 그리하여 봉


수제의 기능을 보완하자는 논의가 거론되다가 1583 년(선조 16)부터 급주(急走)인 보발(步撥)을


실시하였다. 1592 년에는 이원익(李元翼)의 주장에 따라 경상도에 발마(撥馬)인 기발(騎撥)이 실


시되었으며 제도화된 것은 1597 년(선조 30 년) 정유재란 때 김응남 한준겸 등이 중국의 파발제


를 도입하고자 건의하면서 비롯되었다. 『만기요람』에 의하면 파발제 조직은 지역에 따라 직


발(直撥)과 간발(間撥)이 있고 전달수단에 따라 기발과 보발로 나누어져 있었다. 기발은 말을 타


고 전송(傳送)하며 25 리마다 참(站)을 두었으나 곳에 따라서는 20 리 또는 30 리인 경우도 있었다.


참에는 발장(撥將) 1 인 색리(色吏) 1 인 파발군(擺撥軍) 5 인과 말 5 필이 배치되어 임무를 수행하


였다. 한편 보발은 사람이 달려서 전달했는데 30 리마다 참을 두고 이 곳에는 발장 1 인 군정 2 인


을 배치하였다. 전국의 발참 수는 『만기요람』에는 194 곳 『대동지지』에는 213 곳으로 기록되


어 있어 다소 차이가 있다.『대동지지』에 수록된 파발의 조직망을 보면 서발은 의주에서 한성


까지 1050 리의 직로(直路)에 기발로 41 참을 두었고 그 밖의 간로(間路)에 보발로 45 참을 두었다.


북발은 경흥에서 한성까지 2300 리의 직로에 보발로 64 참을 설치하고 간로에 역시 보발로 32 참


을 두었다. 남발은 동래에서 한성까지 920 리의 직로에 보발로 31 참을 설치하였다.


2. 근대통신 도입시대 (1900~1945)


가. 정보통신역사의 시작


고종 25 년인 1885 년 한성·제물포간에 최초로 전신이 개통됨으로써 이 땅에 처음 전기


통신의 역사가 시작됐다. 1896 년을 전후해서는 궁중과 정부 각 아문(부처)에 자석식전화가


가설됨으로써 전화시대가 개막됐다. 이 때 전화는 ‘텔리폰’을 음역해 ‘덕진풍’‘득률


풍’이라고 했으며 말 전하는 기계라는 뜻의 ‘전어기(傳語機)’라고도 불리웠다. 이때 궁


내부용 전화가 개설되면서 도입된 스웨덴 엘엠·에릭슨(LM Ericsson)사의 자석식 단식교


환기가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이 교환기는 회선을 손으로 접속하는 회선 교환방식에 의한


자석발전기를 사용하는 수동식으로 100 회선 용량이었다.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파발(擺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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