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웃는독서회 회지(2021년 1월 제185호)
뒤꼍의 추억
이준관(李準冠·본회 객원 시인)
뒤꼍에는 감나무 한 주 서 있고
밤마다 어머니가 물을 떠놓고 빌던 사
발엔
푸른 별들이 감꽃처럼 피었다 졌다
햇빛으로 반질반질 윤나게 장독대 닦던
어머니 몸에서는 코끝이 찡해지는
간장 냄새가 났다
야단맞고 무릎에 턱을 괴고
코를 훌쩍이고 울고 있으면
아직 떫고 비릿한 감또개가
내 발등에 뚝 떨어졌다, 눈물방울처럼
가끔 장독대에는 어린 뱀이 똬리를 틀
다 가곤 하였지만
뱀은 너무 순해서 혀를 날름거릴 줄도
몰랐고
봄날 자부름에 겨워 자올자올 조는
고양이 콧등에 나비가 앉을락 말락 팔
랑거렸다
뒤꼍 굴뚝에서는 밭에 씨를 뿌리러 간
아버지와
버들붕어 송사리를 쫓아 여울에 간 나
를 부르는
저녁연기 몽실몽실 솟고
누룽지처럼 구수하게 눌어붙은
저녁이 왔다
어머니가 짐짓 모른 척
배고픈 새를 위해 보리쌀 한 줌 흘려
놓던 곳
밤에는 집도 불빛도
고요히 장독 뚜껑으로 덮어 재우던 곳
나를 업어 키우던 어머니 뒷등처럼
때로는 돌아앉아 박꽃처럼 눈물 훔치던
어머니 뒷등처럼
그렇게 그렇게 뒤꼍은 있었다
겨울 농가
저 겨울 농가에서
하룻밤 자고 싶다.
누비포대기처럼 시래기 엮어
외벽에 줄줄이 매달아 놓은 집.
처마 밑에 알전구처럼
씨옥수수 달아놓은 집.
겨울 별자리처럼 천장에
메주 달아놓은 집.
저 겨울 농가
청국장 뜨는 아랫목에
발을 묻고 잠들고 싶다.
밤새 눈이 오는지
개가 아득히 컹컹컹 짖어대고
생쥐가 부뚜막에서
누룽지 한 쪼각 물어가는 집.
머언 밤나무 숲에서 아기올빼미
후후후후 옛날이야기 조르는 소리
들려오는 집.
저 겨울 농가 헛간에 걸어놓은 호미처럼
잠들고 싶다.
동시(童詩)의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