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짓.? 집어들고 빠르게 훑고 반댓손으로 올리는 데에 멈춤이 있어서는 안된다.
신중하지만 빠르게, 신속하지만 실수 없이, 쉼없이 느긋하게. 말이 안된다고
하려다가 그걸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의 손을 보니 그 말이 쑥 들어갔다.
단순노동. 근육의 일정하고 반복적인 움직임. 살아있음을 가장 느낄 수 없는
공간이다. 죽은채로 움직이는. 기계다운.
그래서 생각이 맑아진다. 의도적으로 생각하기를 멈춰주는 곳. 감히 다른
생각을 했다가는 손가락이 푸욱. 내가 누구인가 따위의 질문이 허망해지게하는
최고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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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쇠, 병장, 애꾸, 이쁜이, 순둥이, 엇절이..
여튼 영식씨는 어제부터는 닭 포장을 하는 일을 도왔다. 이천마리에서 조금
모자르게 된 그 닭들인듯 싶다. 알을 더이상 낳기 어려운 닭고기로서의 역할만
남은 닭들을 가공하는 업체에 보내 민둥한 상태의 닭고기들이 들어왔다.
내가 마트에서나 보던 비주얼을 닭농장에서 다시 볼 줄이야. 키우던 개가
밥상위에 올라오더라는 종류의 이야기가 이해되던 순간이었다. 나를 공격하진
않았지만 그 크기의, 모양의, 빛깔의, 소리의, 걸음걸이의 ‘닭’이다. 나를
벌벌 떨게하는 ‘새’. 이따금씩 사장님이 안고 들어오시면(오늘은 유독 같이
'걸어'들어오셨다.. 이렇게 경계가 풀어지는건가.. 내가 점점 닭을 안 무서워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오해를 어떻게 풀까..) 밀웜도 한 주먹 씩 먹이고
내보내는 그 ‘닭’이다. 나에게는 꼬박꼬박 정민씨 하던 분이 문을 열자마자
‘누구야~~ 사랑해~~!!!!’ 하고 구애하던 그 ‘닭’인데.. 어제부터는
‘닭고기’가 됐다. 얼음을 많이 넣으시라. 중닭이 부족하다. 박스에 이렇게
포장해야하냐. 테이핑을 할때는 상자가 들뜨지 않게 해야한다.... 그 사랑하는
닭들을 두고 하는 말일리 없다. 같은 닭이었겠지만 일순간에 이름도 사라져
‘닭고기’로 변신했다. 달걀, 병아리, 닭, 닭고기, 닭요리..는 어쩌면 아주
다른것일지 모른다. 생물학적으로 그리고 물리적으로도 같지만, 그 이외에는
공통점이 아주 없다. 이 괴리가 아주 잠깐 사랑한다는 그 말을 의심하게 했다.
아주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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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출근을 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바쁜 사장님은 오전 한시간 즈음을 전부
나에게 맡기셨다. 한 사람이 알을 세척기에 올리면 다른 사람이 씻겨져 나오는
알을 정리하곤 했는데 그 모든 일을 오전 첫 한시간 동안 내가 전부 해야 했다.
작업속도가 전보다 느려지겠거니 하고 어둑한 작업실 불을 켰다. 여느때처럼
알들이 몇 바구니씩 놓아져 있었는데, 그 뒤 구석에 닭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이었다. 오렌지 빛이 많이 도는 채도가 낮은 갈색 닭이었다. 앉아 몸을
구겨놓은 것 치고도 살이 좀 있어보였다. 문 앞에서 몸이 굳었다. 작업장에
닭들이 있으면 가끔 기계 위로 올라가기도 한다던데.. 가방과 외투를 걸어놓는
고리에 가려면 그 닭 바로 앞에까지 가야 했다. 이번에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그냥 문 앞에 내 짐을 두고 그래도 일은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장갑을 착용했다.
내가 긴장했다는걸 알았는지 그 닭은 계속 소리 내 울거나 날개를 푸드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