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체신 관련 유물 현황조사 및 역사보존을 위한 정책방안 연구 제^2 장_연구의 내용
2 절 - 유 선 통 신
6. 선로·전송 발전사
가. 1885 년 첫 전신선 개통
1885 년 9 월 28 일 한성과 제물포 현 서울과 인천을 잇는 전신선 개통으로 최초의 전신
도입되었다. 1885 년 10 월 서울-의주간 전신선이 가설되어 인천에서 서울 평양을 거쳐 의
주로 연결되는 서로전선이 완공되었다. 서로전선의 개통으로 봉수·역참제도가 전기를 이
용한 근대적 통신방식으로 전환되었다. 청나라는 조선을 통제하고 유사시 군대의 투입을
신속히 할 목적으로 조선 정부를 압박해 의주전선합동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에 따라
조선은 청으로부터 10 만냥의 차관을 빌려 청의 기술로 서로전선을 가설했다. 서로전선의
운영과 관리도 청이 세운 한성전보총국(화전국)에서 담당하였다. 서로전선에 이어 1888 년
에는 서울과 부산을 잇는 남로전선이 1891 년에는 서울-원산간 북로전선이 개설되었다. 남
로전선은 조선 정부가 조선전보총국을 직접 설립해 독자적인 기술로 가설했다. 북로전선
의 개통으로 전국 전신망이 완성되었고 전국적인 전신망을 구축한 우리나라의 통신은 전
화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나. 무장하 선로10) 및 케이블 반송11)
일제말기에 일본 도쿄에서 만주의 봉천까지 연결하는 제 1 루트 즉 약 2700km에 달하는 장거
리 통신선로의 중간부분인 부산과 신의주 사이에 무장하반송 케이블선로가 매설되어 있었다.
이 케이블 선로는 1933 년에 개통된 것으로 그 당시에는 첨단기술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서울
과 부산간의 450km 구간에는 1.4mm 연동선으로서 성형 콰드(quad)로 집속된 20p(pair) 케이블
이 또 서울과 신의주간의 460km 구간에는 14p 케이블이 각각 지하 1.2m의 깊이로 매설되었다.
중계소의 간격은 60km를 표준으로 하고 중계소의 전후 16km에는 10 р 케이블 2 본을 매설하
여 2 본 방식을 채택하고 기타 구간은 1 본 방식을 채택하였다. 통화로수는 처음에는 케이블 1
콰드(2p)에 3 통화로를 중첩시켰으나 그 후에 6 통화로를 중첩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