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체신 유물현황조사 정책연구_2021

(ksy) #1

제 2 장_연구의내용 정보·통신·체신관련유물현황조사및역사보존을위한정책방안연구


2 절 - 유 선 통 신


다. 전후 복구와 무장하 반송케이블 교체


서울-부산간의 무장하반송 케이블은 광복 후 부산에서 일본 방면을 절단하고 서울과 부산


간의 간선로로 사용하였는데. 중계소의 간격 60km에 6 통화로 방식 광복 전 그대로였다. 무장
하반송 케이블은 한국전쟁 당시에 크게 피해를 받았다. 1953 년에 휴전협정이 성립되고 부산에
서 서울로 복귀하자 곧바로 전기통신설비의 피해복구공사를 실시하였다. 이 때에 이 무장하반
송케이블의 복구공사는 체신부 기술진에 의하여 각 중계소에 설치되어 있던 파괴 또는 노후
된 일본 제 6 통화로용 반송단국장치를 철거하고 종래의 60km 간격인 중계소 사이에 20km 간
격으로 무인중계소 2 개소를 추가하여 일본제 T-12 A-TR 반송단국장치로 바꾸어 12 통화로 방
식으로 개량 복구시켰다. 즉 서울과 부산 사이의 9 개 유인중계소 사이에 16 개소의 무인중계소
에 중계기기를 추가 신설하여 서울-부산간의 시외 회선용량을 배로 증설시킨 것이다.

라. 가공나선반송
통신선로는 시내선로와 시외선로로 나누어지는데 일제 말기의 통신선로를 살펴보면 시
내선로에는 나무전주에 완철을 부착하고 통신선으로는 주로 1.6mm의 경동선을 사용하였
다. 시외선로에는 주로 나무전주에 완목을 부착하고 통신선으로는 4.0 2.9 2.0mm의 경동
선과 4.5mm의 철선 등을 사용하였다. 한편 1943 년 말 현재의 통신선로의 연장거리를 살펴
보면 가공나선로(架空裸線路)12)의 경우 시내선로가 3955km 시외선로가 12860km였으며 가
공케이블과 지하케이블을 합친 케이블 선로의 경우 시내선로가 548km 시외선로가
1194km였다. 정부 수립 당시의 시외전화회선은 450 회선이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약 80%가
파괴되어 1951 년에는 197 회선에 불과하였다. 1953 년 휴전 시까지 긴급복구를 추진하여 그
해 말에 시외전화 회선이 322 회선 전신겸용 회선이 202 회선으로 총 524 회선이 되었다. 정
부 환도 후에도 급증하는 시외회선 수요에 부응하기 위하여 시외 전송로(선로 및 전송설
비)의 신속한 복구를 도모하였다.

마. 시외 가공나선로
장거리 시외 가공나선로에 중계코일을 삽입하여 전신전화쌍신법으로 사용하여 왔다. 이

12) 피복 절연 없이 공중에 띄운 형태의 나선은 전기통신에 가장 최초로 사용된 통신


회선. 주로 구리로 만들어지거나 철에 구리를 입혀 만들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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