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체신 유물현황조사 정책연구_2021

(ksy) #1

제 2 장_연구의내용 정보·통신·체신관련유물현황조사및역사보존을위한정책방안연구


5



-








다. 당시 라디오 보급현황을 보면 1947 년 8 월에 집계된 수신기는 18 만 5700 여 대로서 서울


과 경기지역에 68% 주요 도시에 27% 등으로 지역적 편중성이 심하였다. 이 중 진공관이


없어 사장된 라디오수신기도 약 5 만 대로 추산되는데 방송협회는 군정의 연합사령부를 통


하여 약 2 만 대를 보수할 수 있는 물자를 미국과 일본에서 조달하기도 하였다. 제 2 차세계


대전 이전에는 안정도와 감도가 나쁜 스트레이트식(straight)이 주로 사용되었으나 세계대
전 중의 군사통신기술발전에 힘입어 1950 년대부터는 안정도와 감도가 뛰어난 슈퍼헤테로
다인식(Super·heterodyne)으로 모든 수신기가 바뀌었다. 한편 정부수립 당시부터 해외교
포·선교사 및 미군전용 PX 등을 통해서 각종 라디오수신기가 많이 유입되었다. 대부분
미국제품이었으며 그 종류로는 대체로 직류전용·교류전용 및 교류직류 양용 라디오 등
세 가지 유형이 주류를 이루었다. 6·25전쟁 직전인 1950 년 초부터는 신형진공관인 소형
진공관을 쓴 수신기가 도입되었으며 또한 중파와 FM을 겸한 라디오수신기도 서울의 해외
공관 등에 모습을 나타냈다. 전쟁이 끝난 뒤에 라디오방송은 시설확장 및 방송망구축 등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가면서 발전기반을 다져나갔다. 또한 이 때부터는 민간방송 및 상업
방송이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1954 년 12 월에 민간방송인 기독교방송(CBS)이 출력 5 ㎾
주파수 700kHz로 개국하였고 1961 년 12 월에는 문화방송(MBC)이 5 ㎾ 900kHz로 또 동아방
송(DBS)이 1963 년 4 월에 10 ㎾ 1230kHz(나중에 792kHz로 변경)로 개국하였다. 1964 년 5 월
20 ㎾ 1380kHz로 개국한 라디오서울이 같은 해 6 월에 주파수를 640kHz로 바꾸고 1966 년
동양방송(TBC)으로 개칭하였다 .FM방송은 서울 FM방송국이 1965 년 6 월 1 ㎾ 89. 1MHz로
개국한 것이 시초이며 그 뒤 문화FM·한국FM 등의 민간FM방송도 개국되었다. 한편 이와
더불어 국내에서도 1957 년에 삼양전기 1958 년에 금성사가 최초의 라디오생산업체로 등장
하여 수신기부품을 수입하여 라디오생산을 시작하였다. 이처럼 방송의 활성화와 국산품제
조에 따른 수신기의 가격하락에 힘입어 1960 년대 이후 수신기보급율은 급격히 증대하였
다. 1959 년에 30 만 대를 넘어섰던 보유대수는 1960 년에는 42 만여 대로 증가하였고 1961 년
9 월에는 89 만 3000 대 1961 년 말에는 100 만 여대를 돌파하게 되었다. 금성사는 진공관식 수
신기의 제작에 이어 트랜지스터 라디오수신기 생산에 착수하였으며 1962 년에는 처음으로
라디오를 홍콩에 수출하기도 하였다. 한편 5·16군사정변 이후 정부는 특정외래품의 판매
금지조처를 단행하고‘농촌라디오보내기운동’등을 전개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국산품의
판로가 더욱 증대되었다. 1963 년 이후에는 전해콘덴서·MP콘덴서·가변콘덴서·스피커
Free download pdf